| [책] 그로칼랭
| 2010/08/01 00:06

  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작가 로맹 가리, 그가 제2의 문학적 자아인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첫 작품이다. 자신을 향한 외부의 기대와 선입견에서 탈피하고 자신의 작품이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길 원했던 로맹 가리는, 예순 살이 되던 1974년 <그로칼랭> 원고를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다.

"파리에 사는 서른일곱살 독신남 미셸 쿠쟁은 통계일을 하는 샐러리맨으로 회사 동료 드레퓌스 씨를 짝사랑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말 한번 제대로 걸지 못한다. 대도시의 무의미하고 표면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애정결핍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거대한 비단뱀 그로칼랭을 데려다 기르며 애정을 쏟기 시작하는데 ....."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후 몇페이지만에 주인공이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_- 여행지에서 비단뱀을 보고 '즉각적인 우정'을 느끼고 데려온 것은 그렇다치고, 비단뱀의 먹이로 흰 쥐를 사오는 장면이 아주 걸작이다.

... 나는 혼자 살고 있으므로 당연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생쥐에게 블롱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내 손안의 블롱딘이 조그맣게 느껴질수록 쑥쑥 자라서, 갑자기 내 서식지가 꽉 찼다. 블롱딘의 귀는 투명하고 분홍빛이 돌았고 코는 작고 차가웠는데, 그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은 확실한 실체로서 존재하며 혼자사는 남자의 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주인공은 비단뱀에 '블롱딘'를 주지 못하고 같이 사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먹이주는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긴다.
게다가 비단뱀의 이름 "그로칼랭"은 우리말로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뱀이 몸을 칭칭 감는 것에 애정을 느낄만큼, 흰 쥐를 보자마자 이름을 붙일만큼 주인공은 '애정결핍'인 것이다.

 문제는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관계를 통해 지독한 고독함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주인공의 이야기(화자가 주인공이다) 중엔 웃지 못할 희극적인 상황이 많다. 온통 빈자리 투성이인 지하철에서 한 사람이 앉아있으면 바로 옆에가서 앉는다든지. 드레퓌스씨와 결혼할 거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출근시간에 말 한마디 없이 엘레베이터를 같이 타는게 전부라든지. (드레퓌스 씨와의 관계는 오직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죽 읽다보니 점점 이 주인공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해졌다. 주인공 쿠쟁이 말하는 이야기는 정말 두서가 없고 불친절하다. 주인공 스스로 이야기 진행이 "비단뱀에게 자연스러운 방식", 즉 "비단뱀이 전진하는 방식처럼 구불구불 나아가야한다"라고 하니 말 다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가 갑자기 원 이야기로 돌아오다보니, 상황을 이해하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뭐가 뭔지 잘은 모르겠어도 그 문체 자체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아 이거 뭐지? 근데 뭔가 이 사람의 심정은 이해가 갈 것도 같아"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나도 주인공 쿠쟁을 좀 닮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대도시 서울과 그 위성도시에서 살다보면 누구나 쿠쟁 같은 면이 생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어딘가 뒤틀린 경쟁관계와 표면적인 인간관계. 누구나 "열렬한 포옹(그로칼랭)", 스킨십을 바라지만 대도시에서 그런 걸 찾기는 쉽지 않다.  프리허그 운동이 한 때 괜히 인기를 끌었던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조금씩 가지고 있는 "군중 속의 고독"이 극단으로 가면 쿠쟁처럼 되는 것 뿐이다. 난해하고 두서없는 언어로 자아을 방어하면서도 정작 고독은 숨길 수 없는 그런 사람. 하지만 두려워서 정작 인간관계를 맺지는 못하는 사람.

또한 두려움은 자신이 없어도 계속 돌아가는 현대세상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이건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없습니다. 수정 시계라 일년 내내 가니까요"
"오히려 내가 꼭 있어야하고 내가 잊어버리면 멈춰버리는 시계를 찾는데요. 나만의 것 말입니다."
타성에 젖은 사람이 다 그렇듯 주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글쎄. 나도 왠지 내가 없으면 멈춰버리는 세상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럴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종종 쓸쓸해지곤 한다. 왠지 공감이 갔다.

....

소설 <그로칼랭>의 결말은 꽤 난해했다. 두 가지 결말이 있었는데 하나는 원래 작가가 의도했던 것, 하나는 축약된 버전이다. 내가 소설 읽는 훈련이 전혀 안되어있어서 그런지 작가가 의도한 결말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_-; 곰씹어 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인 거 같기도 하고...

------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문구.

“자기 힘으로 사랑받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여러분은 모두 분실물 신세가 될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라는 말이 내겐 중요하게 느껴진다. 운좋게 사랑을 받을 수는 있어도, 자기 힘으로 하지 않으면 결국엔 잃어버린 물건이 되는 거다. 
 


2010/08/01 00:06 2010/08/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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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산 책] 20100626
| 2010/06/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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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신정보검색론 : 재미없습니다. 제 스타일의 학문은 아닌듯 -_-;
  • Sempe 책들 : 대형양장판 다 모았다!!!!! 사실 이분 그림은 워낙 유명하니 설명 생략.
  • 애송시 100편 1,2 : 요새 갑자기 시에 꽂혀서 열심히 읽는 중. 근데 외우긴 힘들어요. 기억력이 감퇴했나;;;
  • 고양이와 장화, 물의 여행, 마지막 휴양지 : 그냥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샀습니다.
  • slide:ology : 프리젠테이션용 슬라이드 만드는 법에 대한 책. 책 전체가 컬러인데다가 슬라이드스럽게 편집을 한지라, 어쩌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좀 들지도 모름.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좋은 슬라이드 예시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듯.

오랜만에 한꺼번에 많이 샀네요. 중간중간에 사놓고 정리 안한 책들도 많지만... 전 그림책 사 모을 때가 제일 뿌듯합니다!


 
2010/06/26 03:10 2010/06/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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