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세상을 바꾸기
내 생각/단상 | 2008/04/22 15:11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말 한번 쯤은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무척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60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 그 중에 한 존재에 불과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뭐하나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 말은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없다"라는 단순 사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 내포된 뜻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너 자신을 인정하고, 쓸데 없는 짓은 하지 마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진실인가? 우리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하는가?
내 생각엔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더라도 "바꿀 수 있다는 것"만은 믿어야 한다.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사실 별로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 뭐가 존재하든, 믿는 것은 자유다. 그리고 별로 손해볼 것도 없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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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평생 쓸데 없는 짓을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을 때 즈음에, "XX, 평생 삽질했는데 도대체 바뀐 게 하나도 없네"하며 짜증내는 정도일 것이다.
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을 때, 최악의 상황은? 평생 쓸모 있어 보이는 일을 하다가, 결국 믿던 대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죽을 때 즈음에, "XX, 정말 바뀌는 거 하나도 없네"하며 짜증내는 일 정도다.

한마디로, 믿든 안 믿든 최악의 상황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거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쪽이 낫지 않을까 싶다. 믿고 있으면 좁쌀만큼이라도 뭔가 바뀔 가능성이 생길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믿음엔 성직자도, 성소도, 헌금도 필요 없다. 말 그대로 공짜다. 공짜. 죽기 전에 한 번 쯤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자, 이제 믿을 마음이 들었다면, 그 믿음을 약간이라도 진실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어떻게 현실화 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아직 나도 찾는 중이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전제만은 꼭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

"인생을 제대로 이해한다"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내가 좋아하는 책인, 드보노의 <생각 연습>에 나온 설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책 앞 부분에는 "검은 실린더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실험은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 사람들에게 "탁자에 놓인 검은 실린더가 20분 후에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넘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서술하게 하는 실험이다. 드보노는 이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사물을 이해하는 다섯 단계를 분류해낸다. 그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단순 묘사 : "검은 실린더가 갑자기 넘어졌다"
    이해의 1단계는 말그대로 단순 묘사다.

2. 얼버무린 말들: "실린더 내부의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작동되는 장치 때문에 넘어졌다."
    이 말은 무언가 개념을 설명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의미는 없다. 사실상 "넘어져야 해서 넘어졌다"라는 말과 별 차이가 없는, 얼버무린 말이다.

3. 이름부여: "중력 때문에 실린더가 넘어졌다."
    3단계에서는 개념에 이름을 붙이는 단계다. "중력"이라는 이름은 사물이 땅으로 끌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것도 "넘어져야 해서 넘어졌다"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단계와 발전하는 점은, 이름을 붙이기 위해선 일반화와 추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다른 여러가지 상황에서 꾸준히 사물이 넘어지는 장면을 관찰해야만, "중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생활에서는 이름을 잘 붙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설명이 끝난다.

4. 작동방법: "실린더는 무게중심의 변화로 기우뚱하며 넘어졌다."
    이 단계에서는 앞 단계에서 나아가, 이름을 세분화한다. 즉, 중력이 작용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 순차적으로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일반적인 설명에 머문다.

5. 자세한 설명: "실린더는 바닥이 불안정한 모양이었고, 접착제로 책상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창문 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결국 접착제가 떼어지면서 넘어졌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모든 메커니즘을 해체해서 더이상 질문이 필요없는 수준까지 설명하게 된다.

이해의 다섯 가지 단계에서 항상 5단계가 1단계보다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면 단계가 높아질 수록 이해가 틀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단순 묘사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접착제 얘기가 나오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높은 단계의 이해를 얻기 위해선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실이 아닐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또는 자원 절약을 위해 낮은 단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굳이 이 분류법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는데는 5단계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만,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는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있다. 또는 "나는 원래 이러 이러한 사람이니까"라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 이름을 붙이면서, 더 이상 변화하지 않으려한다. 이해의 5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3,4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하나 뿐인 인생이고, 그 인생의 주인은 자신밖에 없다.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의문점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어차피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더이상 질문을 던질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때 이후에는 누가 절약해둔 시간을 복리로 쳐주지도, 사는 동안 별로 틀리지 않았다고 칭찬해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능성을 테스트해보며, 자신의 인생을 깊게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운좋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2008/04/22 15:11 2008/04/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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