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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슈 | 2008/04/28 23:31
YY형의 블로그에서 다음의 두 글을 읽었다.
http://yongyeol.com/blog/entry/danger-of-american-beef
http://yongyeol.com/blog/entry/danger-o ··· n-beef-2
여러 자료를 볼 때,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은 분명 상당히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광우병의 위험은 미미한 것이고,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정말 비합리적인 생각일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약간 다른 방향으로 답해보고자 한다.
집단의 위험 vs. 개인의 위험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은 분야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직관적이면서 간단한 위험 평가 방식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인구가 5000만명 가량 되는 영국에서 12년간 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이 161명이라는 사실은, 광우병의 발병 확률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분명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보다는 한참 낮다. 그래서 소고기가 담배보다 항상 덜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생각엔 답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다. 우선 위 위험 평가식에서 첫번째 항을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라고 함은, 사건을 시도하는 회수나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생동안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으로 죽을 확률과 담배를 많이 피워서 죽을 확률을 비교하자면, 분명 후자가 높다. 하지만 단 한 번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을 확률과 단 한 번 담배를 피웠을 때 폐암으로 죽을 확률을 비교한다면? 이것도 후자가 높긴 하겠지만, 전자에 비해서는 약간 확답을 하기가 어렵다. 만약 초단위로 비교한다든지, 여러 조건을 걸면 확률은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두 위험을 완벽하게 비교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두번째 항이다. 여기서 바로 집단의 위험과 개인의 위험이 구별된다.
정말 어떤 사람에게 광우병이 발병했다고 하자. 영국 전체의 입장으로 보면 그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사람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닌 이상, 단지 사망자 수가 1명 늘 뿐이다. 이는 영국이라는 집단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영국 정부 입장에선 12년간 161명밖에 죽지 않는 병을 관리하느니, 금연 캠페인을 벌여 폐암환자를 줄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광우병이 발병한 한 개인이 느끼는 위험이란, 집단이 느끼는 위험보다 훨씬 크다. 왜냐면, 광우병은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 생명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치사율 100%인 병이 발병했을 경우 그 사람이 느끼는 손해는 거의 무한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치사율 50%인 병이 발병했을 때 얻는 손해의 2배보다 훨씬 크다. 죽느냐 마느냐의 문제기 때문이다.
또한 손해의 질적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독감으로 죽는 것이 더 괴로운가 아니면 광우병으로 죽는 것이 더 괴로운가? 둘다 굉장히 괴로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보통 사람들은 후자를 더 무서워할 것이다. 왜냐면 후자는 죽기전에 정신이상 때문에,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는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드신 분들이 발병률이 더 높은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말하자면, 앞의 식에서 첫번째 항의 값이 무척 작더라도, 두번째 항의 값이 무척 클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광우병의 위험이 크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이런 위험은 단지 비합리적인 공포일 뿐인가? 다음의 예를 보면 이 또한 반드시 사실은 아니다.

위 사진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이다. 장면을 설명하자면, 독일군이 도망가고 있는데 미국군인 한명이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총을 겨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예닐곱명의 독일군은 가지고 있던 총을 버리고 항복의 표시를 한다.
이 장면은 독일군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손해다. 단 한명의 병사에게 7명의 병사가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7명의 독일군이 총을 버리지 않고 동시에 미국군인에게 총을 쐈다면? 아마 독일군은 최대 1명 정도 죽고(아니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군인은 제압당했을 것이다. 이쪽이 독일군의 입장에서 볼 때는 훨씬 이익이다. 그리고 아마도 저런 장면은 전투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독일군은 병사들에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장면에서 총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으면 주저말고 총을 쏴라." 이것이 합리적인 대처 방안일 것이다. 하지만 독일군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총을 버리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총을 버리는 행동은 개인에게는 합리적이지만, 집단에게는 비합리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광우병의 위험이 반드시 발병률로만 평가될 수는 없으며,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항상 비합리적인 행동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발병률이 아무것도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 다음 글에 이어 씁니다.
http://yongyeol.com/blog/entry/danger-of-american-beef
http://yongyeol.com/blog/entry/danger-o ··· n-beef-2
여러 자료를 볼 때,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은 분명 상당히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광우병의 위험은 미미한 것이고,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정말 비합리적인 생각일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약간 다른 방향으로 답해보고자 한다.
집단의 위험 vs. 개인의 위험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은 분야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직관적이면서 간단한 위험 평가 방식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위험 =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 X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손해)
인구가 5000만명 가량 되는 영국에서 12년간 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이 161명이라는 사실은, 광우병의 발병 확률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분명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보다는 한참 낮다. 그래서 소고기가 담배보다 항상 덜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생각엔 답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다. 우선 위 위험 평가식에서 첫번째 항을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라고 함은, 사건을 시도하는 회수나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생동안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으로 죽을 확률과 담배를 많이 피워서 죽을 확률을 비교하자면, 분명 후자가 높다. 하지만 단 한 번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을 확률과 단 한 번 담배를 피웠을 때 폐암으로 죽을 확률을 비교한다면? 이것도 후자가 높긴 하겠지만, 전자에 비해서는 약간 확답을 하기가 어렵다. 만약 초단위로 비교한다든지, 여러 조건을 걸면 확률은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두 위험을 완벽하게 비교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두번째 항이다. 여기서 바로 집단의 위험과 개인의 위험이 구별된다.
정말 어떤 사람에게 광우병이 발병했다고 하자. 영국 전체의 입장으로 보면 그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사람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닌 이상, 단지 사망자 수가 1명 늘 뿐이다. 이는 영국이라는 집단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영국 정부 입장에선 12년간 161명밖에 죽지 않는 병을 관리하느니, 금연 캠페인을 벌여 폐암환자를 줄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광우병이 발병한 한 개인이 느끼는 위험이란, 집단이 느끼는 위험보다 훨씬 크다. 왜냐면, 광우병은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 생명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치사율 100%인 병이 발병했을 경우 그 사람이 느끼는 손해는 거의 무한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치사율 50%인 병이 발병했을 때 얻는 손해의 2배보다 훨씬 크다. 죽느냐 마느냐의 문제기 때문이다.
또한 손해의 질적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독감으로 죽는 것이 더 괴로운가 아니면 광우병으로 죽는 것이 더 괴로운가? 둘다 굉장히 괴로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보통 사람들은 후자를 더 무서워할 것이다. 왜냐면 후자는 죽기전에 정신이상 때문에,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는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드신 분들이 발병률이 더 높은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말하자면, 앞의 식에서 첫번째 항의 값이 무척 작더라도, 두번째 항의 값이 무척 클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광우병의 위험이 크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이런 위험은 단지 비합리적인 공포일 뿐인가? 다음의 예를 보면 이 또한 반드시 사실은 아니다.

위 사진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이다. 장면을 설명하자면, 독일군이 도망가고 있는데 미국군인 한명이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총을 겨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예닐곱명의 독일군은 가지고 있던 총을 버리고 항복의 표시를 한다.
이 장면은 독일군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손해다. 단 한명의 병사에게 7명의 병사가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7명의 독일군이 총을 버리지 않고 동시에 미국군인에게 총을 쐈다면? 아마 독일군은 최대 1명 정도 죽고(아니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군인은 제압당했을 것이다. 이쪽이 독일군의 입장에서 볼 때는 훨씬 이익이다. 그리고 아마도 저런 장면은 전투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독일군은 병사들에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장면에서 총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으면 주저말고 총을 쏴라." 이것이 합리적인 대처 방안일 것이다. 하지만 독일군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총을 버리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총을 버리는 행동은 개인에게는 합리적이지만, 집단에게는 비합리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광우병의 위험이 반드시 발병률로만 평가될 수는 없으며,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항상 비합리적인 행동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발병률이 아무것도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 다음 글에 이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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